[스크랩] 죄는 자성이 없다
천수경에 이르길,
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
罪亡心滅兩俱空 是則名爲眞懺悔
죄는 본래 자성이 없다. 여기서 자성(自性)이란 자기의 본성이란 뜻으로 실체(實體)라고도 하는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성질을 말한다. 죄라는 것은 본래 자성(自性)이 없는 것이라 오직 마음 따라 일어나는 것이니,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를 짓고 번뇌를 일으키는 마음이 멸할 때, 죄 또한 없어지고,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지은 죄가 없어지고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멸하여 양쪽이 동시에 함께 공해 지는 것을 시즉명위진참회(是則名爲眞懺悔)곧 진실한 참회라 한다.
불교의 3법인 중에 '제법무아' 즉 모든 것에는 자아가 없다, 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본래 정해져있는 실체나 모습이 있는게 아니고 인연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질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도 본래 있는게 아니라 지,수,화,풍의 요소들이 모여서 나타난 것이고, 생각들도 본래 그런 생각이 있었던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일어났다 사라질뿐 그 실체나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라는 것도 본래 죄라는 것이 있어서 잘못이 생겨나고 죄를 없애기위해 참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따라서 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즉, 마음을 떠나서 죄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음과 죄가 본래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고 죄를 없애려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없애야 할 죄라는 것이 본래 정해진 실체가 없는 것인데 그것을 없앤다는게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합니다. 마음을 착하게 사용하면 착한 행동이 나오고, 나쁘게 사용하면 악한 결과가 나옵니다. 어리석게 사용하면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현명하게 사용하면 성인군자와 같은 생각과 행동이 나타납니다. 즉, 죄, 번뇌, 또는 망상 이라는 것들이 우리의 본래 마음자리 즉 본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물이 끓게되면 물거품이 올라오는데 물거품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물의 움직임에의해 물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물거품을 없애기위해 물거품을 아무리 걷어내려고해도 물거품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거품은 물에 의지하여 생겨난 것이지 외부에서 따로 들어간 것이 아니기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번뇌, 망상과 같은 중생심을 떨쳐 버려내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중생심의 근본은 바로 본래 청정한 본성에서 나온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물이 끓지 않고 고요하게 놓아두면 물거품은 저절로 없어집니다. 즉 욕망이라는 불을 꺼버리면 본래 고요했던 청정한 물과 같은 마음자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다른 예를 들면, 담배를 끊는다고 할때, 주변에 담배를 모두 없애버리면 자연히 담배를 못 피우게 됩니다. 하지만 이걸갖고 담배를 끊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원인은 담배에 있는게 아니라 담배를 피우고자하는 욕망에 있고 그 욕망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때문입니다. 담배 피우는 것이 담배에 원인이 있다면 어린아이에게 담배를 줘도 아이들이 담배를 피워야 할텐데 어린아이들은 담배를 피울 생각이 아예 없습니다. 그러므로 담배를 피우는 원인은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욕망의 근본이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므로 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공한 성품을 깨우치려는 노력 또한 근본자리는 공한 것이고 모든 것이 이 공한 성품에 근본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청정한 근본 성품과 어리석은 중생심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중생심을 없애고 본래면목을 찾으려는 것은 또다른 어리석은 행동이 됩니다. 그렇다고 중생심과 본래 성품이 둘이 아니다라는 것만 기억하고 하루종일 번뇌 망상과 함께 지낸다면 그것은 더더욱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뇌, 망상을 쫓아가지 말고 그것이 나온 본래 공한 성품인 마음자리를 찾아 들어가면 번뇌, 망상이 달라 붙을 자리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진실한 마음을 깨닫게 되고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으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게되고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는 마음이라고 할 본성이라고 할 실제 모습도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과 죄가 모두 공하게 되는 것이니, 그것을 진정한 참회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알음알이로 따져서 불법을 논하게 되면 자신의 수행도 망치고 다른 사람들의 수행도 망치게 될뿐입니다.
무명에 쌓인 중생들은 어두운 방에서 물건을 찾는 사람들처럼 아직 지혜가 밝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지혜를 밝히기 위해 수행하고 정진하고, 기도하며, 참회를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게되면 죄에 대한 과보가 두려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죄가 공하다고 믿고 그 과보 또한 공하기 때문에 죄의 댓가를 받지 않고자 생각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욕망에 눈이 어두운 것입니다. 죄가 공하고 과보 또한 공하고 그것을 일으키고 받는 사람 또한 공하다는 것을 사무치게 깨우치지 못했다면 함부로 말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몇 해전 영화 '밀양'에 보면 주인공 전도연의 자식이 유괴되어 살해 되었는데, 그로 인해 주인공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기독교를 믿게되고 마음의 평온을 얻게 되는데, 어느날 유괴범이 만나게 됩니다. 유괴범은 감옥에서 나온후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주인공은 화가 치밀게 됩니다. 아직 피해자인 당사자는 용서를 안 했는데, 범죄자는 용서를 받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하는 모순이 생겨난 것입니다.
불경에 보면 앙굴마라가 사람들을 죽이고 결국 부처님께 귀의하여 아라한과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앙굴마라가 마을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에게 돌을 던지며 욕을 해댑니다. 죄라는 것은 없앨수 있는게 아니며 그 과보는 반드시 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싶다면 신에게 빌거나 부처님께 빌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죄에 대한 용서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옛날 유럽에서 있었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두 형제가 살았었는데 어느날 양을 훔쳤다가 붙잡혔습니다. 그 벌로 그들의 이마에 'ST' 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ST는 sheep thief (양 도둑)의 약자 였던 것입니다. 그 후로 두 형제는 밖에 나가서 생활할수가 없었습니다. 머리에 찍힌 낙인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고 경멸했습니다. 동생은 매일 술로 세상을 한탄하다가 얼마 안 있어서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마을 주민들의 멸시를 받더라도 참회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마을일을 도왔습니다. 사람들이 꺼리는 하수구 청소라든가 쓰레기 버리는 일등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가 도둑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늙어서 죽어가고 마을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남을 위해 봉사하는 그 형을 보고 사람들은 성자가 마을에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마에 성자 (saint)의 약자인 ST가 이마에 새겨진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