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스크랩] 존재는 뇌 속에 없다.
Borealis 임박사
2011. 7. 9. 15:54
지난해 하바드대학에서는 신경생리학자들이 모여 달라이라마와 그의 제자들을 초대하여 명상과 뇌에 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과연 깊은 명상에 들어 갔을 때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연구하여 그 메카니즘을 밝혀내어 일반사람들도 수행자들과 같은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연구 한것 입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깊은 명상에 들었을 때 MRI 로 뇌를 촬영하고 뇌파의 변화를 조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과학자들은 쥐의 뇌에다 탐침을 꽂아 보듯이 그저 특이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뇌에 탐침을 꽂는 정도로 이러한 조사를 여길 뿐이었습니다.
인간의 뇌와 마음을 연구하는 것은 우울증 치료나 치매치료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학이 저지르는 가장 큰 오류는 뇌에 마음의 정보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즉, 뇌를 조작하면 마음이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실험적으로 성공한 몇몇 사례가 있습니다. 구 소련에서의 파블로프 실험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 실험에서 개에게 먹이를 줄때 종을 치면 나중에 이것이 습관이 되서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주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인슐린이 분비된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은 유물론적 가치관을 가진 소련의 공산당에서는 아주 매혹적인 연구결과 였습니다. 즉 인민을 어떤 수단으로 통제하여 심리상태를 조작할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연구결과로 파블로프는 국가훈장을 받고 그의 이름으로 설립된 '파블로프 신경생리 연구소' 가 생겼습니다.
과연 우리의 존재는 뇌 속에 있을까요?
저는 자신 있게 '아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굳이 유식학을 동원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존재의 부산물입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 I think, therefore I am.)는 따라서 결정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재는 생각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생각 속에는 존재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각이 없어도 존재는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작용에 있어서 뇌의 역할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신적 활동들은 뇌를 의존하여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과학자들의 오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뇌 속에 마음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만약 내가 고추를 먹고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 뇌를 쪼개고 분석해 보아도 거기서는 고추맛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눈을 통해 빛이 들어 오지만 눈동자 속에는 빛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나에게 이봉주 선수의 다리를 이식해 준다고 하더라도 나는 마라톤에서 우승할수는 없을 것입니다. 뇌는 이렇듯 육체의 일부로 봐야지 마음을 컨트롤 하는 기관으로 보는 것은 방향착오적 믿음에 근거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만약 뇌 속에 마음이 존재한다면, 달라이라마의 뇌를 나에게 이식시키면 나의 정체성(identity)은 그순간 바뀔까요? 그렇다면 그렇게 죽은 달라이라마는 다시 환생을 했을때 이전의 기억을 할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만약 그 기억이 모두 나에게 전달 되었다면 달라이라마가 지은 업는 내것이 될까요?
흔히 말하는 의식이라는 것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맞으면 발생했다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8아뢰야식 이라는 것도 연속적으로 상속하여 변하는 것이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의식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므로 우주 공간에 그 성품이 두루 존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의식은 뇌속에만 있을 수 없는 것이됩니다.
뇌라는 것은 육체의 일부이므로 유전정보에의해서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 신체는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발생한 것인데, 수정란 속에는 뇌도 없고 근육도 없지만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능력 즉 유전정보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존재는 유전자 속에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후천적으로 습득된 능력은 유전자에 기록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업은 어디에 기록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록이 되지 않는다면 업은 있을 수 없고 모든 것은 우연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기록이 된다면 어디에 기록 될까요, 유전자에는 기록이 되지 않으므로 유전될수 없을 것이며 뇌에 기록 된다면 뇌는 죽으면 썩어 없어지므로 업은 전달될수 없을 것입니다.
유전자라는 것은 진화의 결과로 생긴 것이기는 하지만 업의 정보를 담고 있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진화라는 것은 환경에 적응한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유전자가 같은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과연 같은 업을 갖고 있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일란성 쌍둥이일지라도 서로의 성향은 다르며 바이러스에 의한 제1형 당뇨병에 동시에 걸릴 확률도 50% 일 뿐입니다. 또한 죽는 날도 같을 수는 없지요.
만약 업의 정보가 유전자에 담겨 있다면 업을 일으키는 것도 유전자이고 업을 받는 다는 것도 유전자라는 말이 됩니다. 일부 극단적인 유전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아마 책 제목이 "이기적 유전자" 일 것입니다. 만약 유전자에 업의 정보가 기록된다면 전생의 유전자가 금생의 유전자 간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어야 할텐데 이것은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몸에는 약 10조개의 세포가 있는데 각 세포마다 들어있는 유전정보는 이론상 같습니다. 이들 유전정보는 없어지거나 새로 들어오거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인위적으로 몇몇 세포의 유전자는 바꿀수는 있습니다.
요즘 클론 즉 복제기술로 동일한 유전정보를 가진 사람을 복제할수 있다고 합니다. 과연 이렇게 해서 만든 복제인간은 원래 유전자를 제공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수 있을까요? 이들은 겉 모습만 같을 뿐이지 전혀 다른 개체인 것입니다.
업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음에서 나와서 마음에 기록됩니다.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유전자가 발현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우리 몸에는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와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환자 수는 늘어만 갑니다. 만약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더 많이 발현되는 방법을 알아내면 암을 쉽게 정복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법을 계속 추구하다 보면 결국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최종적으로 나옵니다.
업은 인과법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업을 만드는 자와 업을 받는자는 과연 같은 사람일까요 다른 사람일까요? 다른 사람이라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것일 됩니다. 같은 사람이라는 말로 옳지 않습니다. 왜냐면 모든 것은 항상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제행무상이지요. 과연 우리 존재는 인과법 안에 있을까요? 밖에 있을까요? 인과법 안에 있다면 절대로 벗어날수 없을 것이고, 밖에 있다면 이미 해탈을 한 것이지요.
만약 내가 상대방을 때리면 그 사람은 저를 때릴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이지요. 그런데 만약 상대방이 나를 때렸다고하더라도 저는 그 사람을 때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인과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할수 없습니다. 이순간 인과의 법칙은 내 안에 들어 오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인과의 법칙 속에서 살았다면 이 도리를 아는 순간 부터는 인과의 법칙이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발상의 전환입니다. 업의 시초는 무엇인지 몰라도 우주의 기원이 무엇인지 모를지라도 나로 인해 앞으로 전개될 업들은 녹아버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치매를 치료할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근육에 문제가 생겨서 이식수술을 받으면 그 부분이 회복됩니다. 그러나 손상된 뇌를 줄기세포를 이용한다고 이전의 기억이 되살아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새로운 뇌세포이기 때문에 이전의 세포에서 상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함장식에 저장된 정보가 이전에 이용하던 뇌세포가 아닌 다른 뇌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그 발현이 같다고 볼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제8아뢰야식이 세로운 뇌세포를 이전처럼 사용하여 컨트롤 할수 있다면 나의 의식으로 남의 뇌세포도 이용할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함장식에 모든 정보가 저장되어 있지만 새로 태어난 아이가 전생의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학적 연구 자체가 무의미 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적 차원에서 비물질적 차원의 존재를 완전히 규명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연구 개발 과정중에서 이익을 얻는 집단이 생길 것이고 거기서 파생하여 산업과 고용창출이 기대될 것이며 연구결과의 혜택을 입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한 예로 유전자 치료가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 졌지만 어쩌다 한두명씩은 효과를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과학적 이론의 가능성 자체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내재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학을 종교와 맞먹는 그런 논리로 받아드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의 뇌와 마음을 연구하는 것은 우울증 치료나 치매치료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학이 저지르는 가장 큰 오류는 뇌에 마음의 정보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즉, 뇌를 조작하면 마음이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실험적으로 성공한 몇몇 사례가 있습니다. 구 소련에서의 파블로프 실험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 실험에서 개에게 먹이를 줄때 종을 치면 나중에 이것이 습관이 되서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주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인슐린이 분비된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은 유물론적 가치관을 가진 소련의 공산당에서는 아주 매혹적인 연구결과 였습니다. 즉 인민을 어떤 수단으로 통제하여 심리상태를 조작할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연구결과로 파블로프는 국가훈장을 받고 그의 이름으로 설립된 '파블로프 신경생리 연구소' 가 생겼습니다.
과연 우리의 존재는 뇌 속에 있을까요?
저는 자신 있게 '아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굳이 유식학을 동원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존재의 부산물입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 I think, therefore I am.)는 따라서 결정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재는 생각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생각 속에는 존재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각이 없어도 존재는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작용에 있어서 뇌의 역할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신적 활동들은 뇌를 의존하여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과학자들의 오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뇌 속에 마음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만약 내가 고추를 먹고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 뇌를 쪼개고 분석해 보아도 거기서는 고추맛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눈을 통해 빛이 들어 오지만 눈동자 속에는 빛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나에게 이봉주 선수의 다리를 이식해 준다고 하더라도 나는 마라톤에서 우승할수는 없을 것입니다. 뇌는 이렇듯 육체의 일부로 봐야지 마음을 컨트롤 하는 기관으로 보는 것은 방향착오적 믿음에 근거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만약 뇌 속에 마음이 존재한다면, 달라이라마의 뇌를 나에게 이식시키면 나의 정체성(identity)은 그순간 바뀔까요? 그렇다면 그렇게 죽은 달라이라마는 다시 환생을 했을때 이전의 기억을 할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만약 그 기억이 모두 나에게 전달 되었다면 달라이라마가 지은 업는 내것이 될까요?
흔히 말하는 의식이라는 것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맞으면 발생했다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8아뢰야식 이라는 것도 연속적으로 상속하여 변하는 것이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의식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므로 우주 공간에 그 성품이 두루 존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의식은 뇌속에만 있을 수 없는 것이됩니다.
뇌라는 것은 육체의 일부이므로 유전정보에의해서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 신체는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발생한 것인데, 수정란 속에는 뇌도 없고 근육도 없지만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능력 즉 유전정보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존재는 유전자 속에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후천적으로 습득된 능력은 유전자에 기록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업은 어디에 기록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록이 되지 않는다면 업은 있을 수 없고 모든 것은 우연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기록이 된다면 어디에 기록 될까요, 유전자에는 기록이 되지 않으므로 유전될수 없을 것이며 뇌에 기록 된다면 뇌는 죽으면 썩어 없어지므로 업은 전달될수 없을 것입니다.
유전자라는 것은 진화의 결과로 생긴 것이기는 하지만 업의 정보를 담고 있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진화라는 것은 환경에 적응한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유전자가 같은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과연 같은 업을 갖고 있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일란성 쌍둥이일지라도 서로의 성향은 다르며 바이러스에 의한 제1형 당뇨병에 동시에 걸릴 확률도 50% 일 뿐입니다. 또한 죽는 날도 같을 수는 없지요.
만약 업의 정보가 유전자에 담겨 있다면 업을 일으키는 것도 유전자이고 업을 받는 다는 것도 유전자라는 말이 됩니다. 일부 극단적인 유전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아마 책 제목이 "이기적 유전자" 일 것입니다. 만약 유전자에 업의 정보가 기록된다면 전생의 유전자가 금생의 유전자 간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어야 할텐데 이것은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몸에는 약 10조개의 세포가 있는데 각 세포마다 들어있는 유전정보는 이론상 같습니다. 이들 유전정보는 없어지거나 새로 들어오거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인위적으로 몇몇 세포의 유전자는 바꿀수는 있습니다.
요즘 클론 즉 복제기술로 동일한 유전정보를 가진 사람을 복제할수 있다고 합니다. 과연 이렇게 해서 만든 복제인간은 원래 유전자를 제공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수 있을까요? 이들은 겉 모습만 같을 뿐이지 전혀 다른 개체인 것입니다.
업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음에서 나와서 마음에 기록됩니다.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유전자가 발현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우리 몸에는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와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환자 수는 늘어만 갑니다. 만약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더 많이 발현되는 방법을 알아내면 암을 쉽게 정복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법을 계속 추구하다 보면 결국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최종적으로 나옵니다.
업은 인과법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업을 만드는 자와 업을 받는자는 과연 같은 사람일까요 다른 사람일까요? 다른 사람이라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것일 됩니다. 같은 사람이라는 말로 옳지 않습니다. 왜냐면 모든 것은 항상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제행무상이지요. 과연 우리 존재는 인과법 안에 있을까요? 밖에 있을까요? 인과법 안에 있다면 절대로 벗어날수 없을 것이고, 밖에 있다면 이미 해탈을 한 것이지요.
만약 내가 상대방을 때리면 그 사람은 저를 때릴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이지요. 그런데 만약 상대방이 나를 때렸다고하더라도 저는 그 사람을 때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인과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할수 없습니다. 이순간 인과의 법칙은 내 안에 들어 오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인과의 법칙 속에서 살았다면 이 도리를 아는 순간 부터는 인과의 법칙이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발상의 전환입니다. 업의 시초는 무엇인지 몰라도 우주의 기원이 무엇인지 모를지라도 나로 인해 앞으로 전개될 업들은 녹아버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치매를 치료할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근육에 문제가 생겨서 이식수술을 받으면 그 부분이 회복됩니다. 그러나 손상된 뇌를 줄기세포를 이용한다고 이전의 기억이 되살아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새로운 뇌세포이기 때문에 이전의 세포에서 상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함장식에 저장된 정보가 이전에 이용하던 뇌세포가 아닌 다른 뇌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그 발현이 같다고 볼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제8아뢰야식이 세로운 뇌세포를 이전처럼 사용하여 컨트롤 할수 있다면 나의 의식으로 남의 뇌세포도 이용할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함장식에 모든 정보가 저장되어 있지만 새로 태어난 아이가 전생의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학적 연구 자체가 무의미 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적 차원에서 비물질적 차원의 존재를 완전히 규명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연구 개발 과정중에서 이익을 얻는 집단이 생길 것이고 거기서 파생하여 산업과 고용창출이 기대될 것이며 연구결과의 혜택을 입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한 예로 유전자 치료가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 졌지만 어쩌다 한두명씩은 효과를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과학적 이론의 가능성 자체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내재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학을 종교와 맞먹는 그런 논리로 받아드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하겠습니다.
출처 : 청봉스님의 장군죽비
글쓴이 : 미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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