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스크랩] Re:[뉴스위크] 신들은 인간의 뇌속에?
Borealis 임박사
2011. 7. 9. 16:08
이글은 위의 기사가 나간후, 제가 인터넷에 올렸던 글입니다.
뉴스위크 5월호에 종교와 두뇌에 관한 글이 나왔을 때 과연 무슨내용일까하고
보았는데 결국은 저자가 말한대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더군요.
아니면 종교가들의 반발에 부딛히는 것을 꺼려해서 일부러 마지막에 신이 인간의 뇌에서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뇌 밖에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며 결국 믿음의 문제로 살짝돌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튼 이러한 시도를 보는 순간 한편으론 또다른
파블로프의 실험이 아니겠냐하는 생각들었습니다. 게다가 현대 과학으론 아직
의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구경은커녕 근처에도 못가본 상태이니 종교적 체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 식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왜냐면 깨달음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될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물질로 보는한 깨달음이나 신이라는
것을 발견할 방법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자아라는 것 또는
의식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본성이나 자아는
실체는 없지만 작용은 나타납니다. 그 첫 번째 작용이 의식입니다. 따라서 그
작용을 보고 실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실체를 보려하면 도저히 볼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전에도 나와 있듯이 '부처를 눈으로 보려하거나 소리로
들으려 한다면 부처를 만날 수 없다.'라고 나와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뉴스위크지에 나온 '종교와 뇌'라는 칼럼 바로 뒤에 이어
Kenneth L. Woodward가 쓴 "신념은 느낌이상의 것"이라는 칼럼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라 하겠습니다. 이사람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신경학자들의 큰 실수는 흔히말하는 영적체험이라는 것과 종교성을 혼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뇌를 뒤져서 신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 존재를
믿는 것처럼 의미없는 주장이 되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말은 무신론자는 유신론자의 동업자라는 라즈니쉬의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과연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신과 내가 하나다라는 것을 느꼈으며 명상도중에
空을 체험하고 무아라는 것을 깨우쳤냐 하는 것을 예로 들며 이 글은 계속됩니다.
영적체험이라는 것 자아가 없어지고 다른 사물과 하나가 되는 것은 종교적인 것과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 사이에서 몰입된 섹스행위도중에 일어날 수 있고, 록 콘서
트도중에 모든 감각을 멈춰지고 자아가 사라질수 있지만, 그것을 두고 종교성
이 높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신경학자들은 명상가들이 종교적 체험
을 하는 것은 그렇게 뇌를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할수 있습니
다. 그렇다면 영적체험시 일어나는 뇌의 변화랑 원수를 사랑하고 에이즈환자
를 통해 예수를 보려는 사람들의 뇌파랑 같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다른 측면에
서는 이러한 자기헌신을 하는 사람들도 신의 은총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하
는 신학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헌신을 하는 종교인들
이나 보살행을 하는 사람을 두고 자긍심이나 자기만족을 위해 그렇게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수많은 갑론을박과는 상관없이 종교계에서 깨우친
척도를 가늠할때는 영적인 체험을 했느냐가 아닌 얼마나 자비심이 있느냐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영적체험에 대해 연구하고 때론 무시하고 신비하기도하지만
현실에서는 영적체험에대한 오해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분은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는 아주머니이신데, 하루는 저에게 얘기하길 같
은 성당에 다니는 어떤분은 기도하다가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드디
어 신이 자기를 만졌다고 생각하고 마치 이제 구원받는 것처럼 기뻐하더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내가 기도할때는 저런일이 일어나지 않나하고 매
우 섭섭해 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 구원받았
다고 하는 사람은 현재 어떻게 행동하냐고요. 그랬더니 점점더 교만해지고 독
선으로 신도회의 일을 꾸려나가서 주위에 친구들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비한 체험같은거에 신경쓰지 말고 매일 한결같이 사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해 준 적이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스님은 토굴에서 수행하다가 안광이 뚤리면서 굴밖의 세상을
불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스님은 자신이 드디어 깨우침을 얻은 것으로 생각
하고 큰스님께 달려갔습니다. 이제는 벽이나 문밖에 있는 것을 환히 볼수 있으
니 무(無)를 깨우쳤다고 큰스님께 말했더니 큰스님은 즉시 주장자로 머리통을 두
드리며, 이래도 벽을 뚫고 보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스님은 이상
하게도 그 아픔때문이지 더 이상 벽을 뚫고 볼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스님은 자신이 마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다시 열심히 수행했다는 이야기가 있
습니다. 영적체험이라는 것이 주위에서 많이 볼고 듣고 하지만 이런
것은 깨달음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않을뿐더러, 더욱이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왼뺨을 맞고 오른뺨을 내주는 것이랑 별로 상관있는 일은 아니라 생
각됩니다.
뉴스위크 5월호에 종교와 두뇌에 관한 글이 나왔을 때 과연 무슨내용일까하고
보았는데 결국은 저자가 말한대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더군요.
아니면 종교가들의 반발에 부딛히는 것을 꺼려해서 일부러 마지막에 신이 인간의 뇌에서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뇌 밖에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며 결국 믿음의 문제로 살짝돌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튼 이러한 시도를 보는 순간 한편으론 또다른
파블로프의 실험이 아니겠냐하는 생각들었습니다. 게다가 현대 과학으론 아직
의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구경은커녕 근처에도 못가본 상태이니 종교적 체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 식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왜냐면 깨달음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될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물질로 보는한 깨달음이나 신이라는
것을 발견할 방법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자아라는 것 또는
의식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본성이나 자아는
실체는 없지만 작용은 나타납니다. 그 첫 번째 작용이 의식입니다. 따라서 그
작용을 보고 실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실체를 보려하면 도저히 볼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전에도 나와 있듯이 '부처를 눈으로 보려하거나 소리로
들으려 한다면 부처를 만날 수 없다.'라고 나와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뉴스위크지에 나온 '종교와 뇌'라는 칼럼 바로 뒤에 이어
Kenneth L. Woodward가 쓴 "신념은 느낌이상의 것"이라는 칼럼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라 하겠습니다. 이사람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신경학자들의 큰 실수는 흔히말하는 영적체험이라는 것과 종교성을 혼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뇌를 뒤져서 신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 존재를
믿는 것처럼 의미없는 주장이 되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말은 무신론자는 유신론자의 동업자라는 라즈니쉬의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과연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신과 내가 하나다라는 것을 느꼈으며 명상도중에
空을 체험하고 무아라는 것을 깨우쳤냐 하는 것을 예로 들며 이 글은 계속됩니다.
영적체험이라는 것 자아가 없어지고 다른 사물과 하나가 되는 것은 종교적인 것과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 사이에서 몰입된 섹스행위도중에 일어날 수 있고, 록 콘서
트도중에 모든 감각을 멈춰지고 자아가 사라질수 있지만, 그것을 두고 종교성
이 높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신경학자들은 명상가들이 종교적 체험
을 하는 것은 그렇게 뇌를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할수 있습니
다. 그렇다면 영적체험시 일어나는 뇌의 변화랑 원수를 사랑하고 에이즈환자
를 통해 예수를 보려는 사람들의 뇌파랑 같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다른 측면에
서는 이러한 자기헌신을 하는 사람들도 신의 은총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하
는 신학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헌신을 하는 종교인들
이나 보살행을 하는 사람을 두고 자긍심이나 자기만족을 위해 그렇게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수많은 갑론을박과는 상관없이 종교계에서 깨우친
척도를 가늠할때는 영적인 체험을 했느냐가 아닌 얼마나 자비심이 있느냐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영적체험에 대해 연구하고 때론 무시하고 신비하기도하지만
현실에서는 영적체험에대한 오해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분은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는 아주머니이신데, 하루는 저에게 얘기하길 같
은 성당에 다니는 어떤분은 기도하다가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드디
어 신이 자기를 만졌다고 생각하고 마치 이제 구원받는 것처럼 기뻐하더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내가 기도할때는 저런일이 일어나지 않나하고 매
우 섭섭해 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 구원받았
다고 하는 사람은 현재 어떻게 행동하냐고요. 그랬더니 점점더 교만해지고 독
선으로 신도회의 일을 꾸려나가서 주위에 친구들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비한 체험같은거에 신경쓰지 말고 매일 한결같이 사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해 준 적이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스님은 토굴에서 수행하다가 안광이 뚤리면서 굴밖의 세상을
불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스님은 자신이 드디어 깨우침을 얻은 것으로 생각
하고 큰스님께 달려갔습니다. 이제는 벽이나 문밖에 있는 것을 환히 볼수 있으
니 무(無)를 깨우쳤다고 큰스님께 말했더니 큰스님은 즉시 주장자로 머리통을 두
드리며, 이래도 벽을 뚫고 보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스님은 이상
하게도 그 아픔때문이지 더 이상 벽을 뚫고 볼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스님은 자신이 마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다시 열심히 수행했다는 이야기가 있
습니다. 영적체험이라는 것이 주위에서 많이 볼고 듣고 하지만 이런
것은 깨달음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않을뿐더러, 더욱이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왼뺨을 맞고 오른뺨을 내주는 것이랑 별로 상관있는 일은 아니라 생
각됩니다.
출처 : 청봉스님의 장군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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