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수식-친척관계 분별작용 16. 수식-국토의 분별작용 17, 수식-불사의 분별작용
좌선삼매경 15. 수식 - ④ 친척관계의 분별작용(親里覺)을 없애라.
問曰, 云何除親理覺.
答曰, 應如是念. 世界生死中自業緣牽, 何者是親何者非親, 但以愚癡故橫生著心, 計爲我親. 過去世非親爲親, 未來世非親爲親, 今世是親過去非親. 譬如鳥栖暮集一樹晨飛各隨緣去. 家屬親理亦不如是. 生世界中各各自異心緣會故親緣散故踈. 無有定實, 因緣果報共相親近, 譬如乾沙緣手團握. 緣捉故合, 緣放故散. 父母養子老當得報. 子蒙懷抱養育故應報. 若順其意則親, 若逆其意是賊. 有親不能益而反害, 有非親無損而大益. 人以因緣故而生愛. 愛因緣故而更斷. 譬如畵師作婦女像, 還自愛著. 此亦如是. 自生染著染著於外. 過去世中汝有親理, 今世於汝復何所作. 汝亦不能益過去親. 過去親不益汝. 兩不相益. 空念之爲是親非親. 世界中不定無邊. 如阿羅漢敎新出家戀親弟子言. 如惡人吐食更欲還瞰, 汝亦如是. 如已得出家. 何以還欲愛著. 是剃髮染衣是解脫相. 汝著親理不得解脫還爲愛所繫, 三界無常流轉不定, 若親, 非親, 雖今親理久久則滅. 如是十方衆生廻轉親理無定. 是非我親. 人欲死時無心無識. 直視不轉, 閉氣命絶, 如墮闇坑. 是時親理家屬安在. 若初生時先世非親今强和合作親. 若當死時復非親. 如是思惟不當著親. 如人兒死, 一時三處父母俱時啼哭. 誑天上父母妻子. 人中亦爲誑, 龍中父母亦爲誑48) 如是種種正觀除親理覺.
문 어떻게 친척 관계의 분별작용(思覺)을 제거하는가?
답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세계의 삶과 죽음 속에서 자신의 업이 일체의 조건을 이끌어 간다.
어느 것이 가까운 것이고, 어느 것이 가깝지 않은 것인가? 다만 어리석기 때문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나와 친하다고 헤아린다. 과거 세상에서는 친하지 않음으로 친함을 삼고, 미래 세상에도 친하지 않은 것으로 친함을 삼을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는 친한 것이 과거 세상에서는 친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컨대 새가 저녁에는 한 나무에 모여 살다가 아침이면 각각 인연 따라 날아 옮겨가는 것과 같다.
가족과 친척도 이와 같다. 세계 속에 살면서도 각각 스스로 마음을 달리 한다. 여러 가지의 조건(緣)이 모였기 때문에 가깝고(親), 조건이 흩어졌기 때문에 성근(疎) 것이다.
정해진 실재가 있을 수 없다.
인연의 과보 때문에 서로 가까운 것이다.
예컨대 마른 모래를 손으로 둥글게 잡은 것과 같다. 조건이 만들어졌기에 합해진 것이며,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흩어진다. 부모는 자식을 양육하고 늙어서 마땅히 보답을 받아야만 한다.
자식은 품어주고 길러준 은혜를 입었기에 마땅히 보답해야만 한다. 만일 그러한 뜻에 따르면 가까운 것이며, 만일 그러한 뜻에 거스르면 이것은 도적이다. 친하면서 이롭게 할 수 없으면 도리어 해롭게 한 것이며, 친하지 않으면서 손해가 없으면 크게 이로운 것이다.
사람은 인연 때문에 애착심을 내며, 애착의 인연 때문에 다시 끊는다. 예컨대 화가가 아낙네의 모습을 그려 놓고 도리어 스스로 애착하는 것과 같다.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염착(染著)49)하는 마음을 내어 바깥에 염착한다.
과거의 세상 속에서 그대는 친척관계(親理)였다. 지금 세상에서 그대는 다시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가? 과거의 친함도 그대를 이롭게 할 수는 없다. 두 가지가 서로 이롭게 할 수 없다. 공허한 생각이 그들의 친함과 친하지 않음을 만든다. 세계 속에서는 정해진 것도 없고 끝도 없다. 아라한이 새로 출가하여 친척을 그리워하는 제자에게 가르치시어 말씀하는 것과 같다. 사악한 사람이 음식을 뱉었다가 다시 도로 삼키고자 하는 것과 같다.
그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대는 이미 출가하였거늘 무슨 까닭에 다시 애착하려고 하는가?
이 삭발염의는 해탈의 모습이다.
그대가 친척에게 집착한다면 해탈할 수 없으며 도리어 애착 때문에 묶이게 된다. 삼계(三界)는 늘 변하기 때문에 흐르고 굴러서 고정되지 않는다. 만일 가깝다면 가까운 것이 아니다. 비록 지금의 친척이 오래 갈 것이라고 하나 곧 소멸한다. 이와 같이 시방의 중생은 돌고 돈다.
친척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이것은 나의 친척이 아니다.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무심하고 분별력도 없다. 곧바로 보아 굴리지 않는다. 기(氣)를 닫고 목숨이 끊어져 마치 어두운 구덩이에 떨어진 것과 같다. 이 때 친척과 가족들은 편안히 있다. 처음 태어날 때는 이전 세상의 친척이 아닌데도 지금은 억지로 화합하여 친척을 만든다.
죽음에 즈음했을 때는 다시 친척이 아니다.
이와 같이 사유하여 마땅히 친척에 집착하지 말라. 마치 사람의 어린애가 죽자, 일시에 세 곳에서 부모가 동시에 우는 것과 같다. 하늘 위의 부모와 처자를 속이고, 사람 중에서도 속이며, 용(龍) 중의 부모도 속이게 된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바른 진리를 관(觀)하여 친척관계의 분별작용(思覺)을 제거한다.
좌선삼매경 16. 수식 - ⑤ 국토의 분별작용(國土覺)을 없애라.
問曰, 云何除國土覺.
答曰, 行者若念是國土豊樂安隱多諸好人, 恒爲國土覺繩所牽. 將去罪處, 覺心如是. 若有智人不應念著, 何以故, 國土種種過罪, 所燒時節轉故. 亦有飢餓, 身疲極故. 一切國土無常安者. 復次老病死苦無國不有. 從是間身苦去得彼處身苦. 一切國土去無不苦. 假有國土安隱豊樂, 而有結惱心生苦患, 是非好國土. 能除雜惡國土, 能薄結使令心不惱, 是謂好國土. 一切衆生有二種苦. 身苦心苦. 常有苦惱無有國土無此二惱. 復次有國土大寒, 有國土大熱, 有國土飢餓, 有國土多病, 有國土多賊. 有國土王法不理. 如是種種國土之惡, 心不應著. 如是正觀除國土覺.
문 어떻게 국토의 분별적용(思覺)을 없애는가?
답 수행자가 만일 이 국토는 풍요롭고 즐겁고 안온하며 갖가지 좋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면 항상 국토라는 분별작용의 새끼줄에 끌려 다니게 된다. 장차 잘못된 점을 버리면 마음을 깨닫는 것이 이와 같다.
만일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생각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토는 가지가지의 허물과 죄악으로 타버리게 되고 시절은 변하기 때문이며, 또한 배고픔과 몸의 피로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일체의 국토는 언제나 편안한 것은 아니다. 또한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이 없는 나라는 없다. 이 사이의 육체적 괴로움에서 저 곳의 육체적 괴로움을 얻는다.
일체의 국토가 괴로움 아닌 것이 없다.
이를테면 어떤 국토가 안락하고 풍족하고 즐거우나, 괴로움을 만들어 마음에 괴로움과 우환이 생긴다. 이것은 좋은 국토가 아니다. 능히 잡스럽고 나쁜 국토를 없앨 수 있고, 능히 번뇌를 엷게 할 수 있으며, 마음을 괴롭히지 않으면, 이를 좋은 국토라 이름한다.
일체의 중생은 두 가지 괴로움을 지니니, 육체적 괴로움과 정신적 괴로움이어서 언제나 고뇌를 지니고 있다.
이상 두 가지 고뇌가 없는 국토는 없다.
또한 어떤 국토는 매우 춥고 어떤 국토는 매우 더우며, 어떤 국토는 배고픔에 허덕이고, 어떤 국토는 질병이 많으며, 어떤 국토는 도적이 많고, 어떤 국토는 왕법(王法)으로 다스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국토의 악폐를 마음으로 마땅히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바른 진리를 관(觀)하여 국토의 분별작용(思覺)을 제거한다.
좌선삼매경 17. 수식 - ⑥ 불사의 분별작용(不死覺)을 없애라.
問曰, 云何除不死覺.
答曰, 應敎行者. 若好家生, 若種族子50)才技力勢勝人一切莫念. 何以故, 一切死時不觀老少貴賤才技力勢. 是身是一切憂惱諸因緣因51). 自見少多壽. 若得安隱是爲癡人. 何以故, 是謂憂惱人, 依是四大 四大造色如四毒蛇共不相應, 誰得安隱者. 出息期入是不可信. 復次人睡時欲期必覺是事難信. 受胎至老死事恒來. 求死時節言常不死. 云何可信. 譬如殺賊拔刀注箭, 常求殺人, 無憐愍心. 人生世間死力最大, 一切無勝死力强者. 若過去世第一妙人無能脫此死者 現在亦無大智人能勝死者. 亦非軟語求, 非巧言誑可得避脫. 亦非持戒精進能却此死. 以是故當知, 人常危脆不可怙恃. 莫信計常我壽久活. 是諸死賊常將人去. 不付老竟然後當殺. 如阿羅漢敎諸覺所惱弟子言. 汝何以不知厭世入道, 何以作此覺. 有人未生便死, 有生時死者, 有乳餔時, 有斷乳時, 有小兒時, 有盛壯時, 有老時. 一切時中間死法界. 譬如樹華華時便墮, 有果時墮, 有未熟時墮. 是故當知. 勤力精進求安隱道, 大力賊共住不可信. 此賊如虎巧覆藏身. 如是死賊常求殺人. 世界所有空如水泡, 云何當言待時入道. 阿誰能證言汝必老可得行道. 譬如嶮岸大樹上有大風, 下有大水崩其根土. 誰當信此樹得久住者. 人命亦如是少時不可信. 父如穀子, 母如好田, 先世因緣罪福如雨澤, 衆生如穀, 生死如收刈. 種種諸天子人王智德. 如天王佐天, 鬪破諸阿須倫軍, 種種受樂極高大明, 還沒在黑闇. 以是故莫信命活言, 我今日當作此, 明後當作是. 如是正觀種種52)除不死覺.
문 어떻게 죽지 않는다는 분별작용(思覺)을 없애겠는가?
답 마땅히 수행자에게 가르쳐야 한다.
만일 좋은 집에서 태어나거나 같은 종족의 자식ㆍ 재기(才技)ㆍ 세력이 뛰어난 사람 등 일체를 생각하지 마라.
왜냐하면 모든 것이 죽을 때는 늙음ㆍ 젊음ㆍ 귀함ㆍ 천함ㆍ 재주ㆍ 기술ㆍ 힘ㆍ 세력을 살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몸은 일체의 근심과 번뇌의 가지가지 인연의 근본인데, 어려서 오래 사는 것을 보고서, 안온함을 얻는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근심과 번뇌의 원인이 이 사대(四大)에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대가 물질을 만들지만 마치 네 마리의 독사와 같아서 함께 상응(相應)하지 않는다.
누가 안온함을 얻을 수 있는가?
날숨이 들어올 것을 기대하지만 이것을 믿을 수 없다.
또한 사람이 잠잘 때 반드시 깰 것을 기약하지만, 이 일도 믿기 어렵다.
수태(受胎)에서부터 늙을 때까지 죽을 일은 늘 온다.
죽을 때를 찾으면서도 항상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예컨대 살인하는 도적이 칼을 뽑고 활시위에 화살을 끼워 항상 사람을 죽이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다.
세간의 인생에서 죽음의 힘이 가장 크다. 죽음의 힘보다 강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만일 과거의 세상에서 제일 미묘한 사람이라도 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면 현재도 또한 죽음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큰 지혜를 지닌 사람은 없다. 또한 부드러운 말로도 구할 수 없으며 교묘한 말로 속이더라도 벗어나 피할 수 없다. 또한 지계(持戒)와 정진도 이 죽음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마땅히 사람은 늘 위급하여 믿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항상 나의 목숨은 오래 살 것이라고 믿고 헤아리지 마라.
이 여러 가지 죽음의 도적은 항상 사람을 끌어간다. 늙어서 마치기를 기다린 연후에 마땅히 죽이지 않는다. 마치 아라한이 고뇌하는 제자들에게 여러 깨달음을 가르쳐서 말하는 것과 같다.
그대는 왜 세간을 싫어하여 도에 들어올 줄 모르는가? 왜 이 깨달음을 알지 못하는가?
어떤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문득 죽는다.
태어날 때 죽는 사람이 있고, 젖먹이 때에, 젖을 끊을 때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어려서, 어떤 사람은 장년에, 어떤 사람은 늙어서 죽으니, 일체의 시간 속에서 죽음의 법계에 들어간다.
예컨대 나무의 꽃이 피자마자 곧 떨어지거나 열매가 되어서 떨어지기도 하며, 아직 익지 않았을 때 떨어지기도 하는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마땅히 삼가 정진에 힘써서 안온한 도를 찾아야 함을 알아야 한다.
커다란 힘을 지닌 도적은 함께 살아도 믿을 수 없다. 이 도적은 호랑이처럼 교묘하게 가리어 몸을 숨긴다.
이와 같이 죽음의 도적은 항상 사람을 죽이려 한다.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공이요 물거품과 같다.
어찌하여 마땅히 때를 기다려서 도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는가?
어느 누가 그대는 늙어서 반드시 행도(行道)를 얻을 수 있다고 증언할 것인가?
예컨대 험난한 언덕의 커다란 나무 위에 큰 바람이 있고, 아래에 많은 물이 있어서 그뿌리의 흙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누가 당연히 이 나무가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 것인가? 사람의 목숨도 이와 같은데 어려서는 믿지 않는다.
아버지는 곡식의 씨앗과 같고, 어머니는 좋은 밭과 같다. 앞 세상의 죄복(罪福)과 인연함은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비(雨)와 같으며, 중생은 곡식과 같고, 생사(生死)는 수확함과 같다. 가지가지의 여러 천자(天子)와 인왕(人王)의 지혜와 덕은 하늘의 임금이 하늘을 도와서 여러 아수륜(阿須倫)53)의 군대와 싸워 격파하여 여러 가지의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극히 높고 크고 밝지만, 도리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빠지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목숨이 살아있다고 믿고 '내 오늘은 마땅히 이것을 하고, 내일은 마땅히 이것을 하리라'고 말하지 마라. 이처럼 바른 진리를 관(觀)하여 여러 가지로 죽지 않는다는 분별작용(思覺)을 제거한다.
如是先除
麤思覺, 却後除細思覺, 心淸淨生得正道. 一切結使盡, 從是得安隱處. 是謂出家果. 心得自在, 三業第一淸淨不復受胎, 讀種種經多聞, 是時得果報. 如是得時, 不空破魔王軍, 便得第一勇猛名稱 世界中煩惱將去, 是不名健. 能破煩惱賊, 滅三毒火, 涼樂淸淨, 涅槃林中安隱高枕, 種種禪定ㆍ 根ㆍ 力ㆍ 七覺淸風四起, 顧念衆生沒三毒海. 德妙力如是乃名爲健. 如是等散心, 當念阿那般那學六種法, 斷諸思覺. 以是故念數息.
問曰, 若餘不淨念佛等四觀54)中, 亦得斷思覺, 何以故獨數息.
答曰, 餘觀法寬難失故, 數息法急易轉故. 譬如放牛, 以牛難失故, 守之少事, 如放獼猴易失故, 守之多事. 此亦如是, 數息心數不得少時他念, 少時他念則失數. 以是故初斷思覺應數息.
이와 같이 먼저 거친 분별작용(細思覺)을 제거한 뒤에 세밀한 분별작용(細思覺)을 제거하여, 마음이 청정해지면 살아서 올바른 도를 얻는다. 일체의 번뇌가 없어져서 안온한 곳을 얻는 것을 출가의 열매(果)라고 말한다.
마음에 자재함을 얻고, 삼업(三業)이 가장 청정해져 다시는 태에 들지 않으며,
가지가지의 경전을 읽고 많이 들으면 이때 과보를 얻는다.
이와 같이 과보를 얻으면 헛되지 않아 마왕의 군대를 격파하여 문득 가장 용맹한 이름을 얻는다. 세계 속에서 번뇌의 장군은 사라지는데 이것을 굳세다고 이름하지 않는다.
능히 번뇌의 도적을 격파하고 삼독의 불을 없애 시원하게 청정함을 즐기고 열반의 숲 속에서 안온하게 베개를 높이 베며, 가지가지의 선정(禪定)ㆍ 근(根)ㆍ 역(力)ㆍ 칠각지(七覺支)의 청량한 바람이 네 번 일어나고, 중생들이 삼독의 바다에 빠진 것을 돌아본다. 공덕의 미묘한 힘이 이와 같은 것을 이름하여 굳세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마음이 흩어지면 안나반나(安那般那)를 관찰해야 마땅하고,
여섯 가지 법을 배워야 여러 가지 분별작용이 끊어진다. 이 때문에 수식관(數息觀)을 하는 것이다.
문 만일 나머지 부정관과 염불 등의 네 가지 관법으로도 역시 분별작용을 끊을 수 있다면 무슨 까닭에 유독 수식관만을 말하는가?
답 나머지 관법은 느슨해서 잃어버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수식관법은 급하여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풀어놓은 소와 같다. 소는 잃어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지키는 일이 적으며, 풀어 놓은 원숭이는 잃어버리기가 쉽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는 일이 많은 것과 같다. 이것 또한 그렇다.
수식관의 심수(心數)는 어렸을 때의 생각을 얻을 수 없다. 어렸을 때 그것을 생각하면 곧 심수를 잃는다. 이 때문에 처음에 분별작용(思覺)을 차단하고 마땅히 호흡을 헤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