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진공묘유에 대해 여쭙습니다. 에
큰스님께 삼배올립니다.()()()
진공묘유에 대해 질의한 내용에 답변글이라 게시한 것을 보니까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만 분명하게 가려낼 수가 없습니다.
더운 날씨에 수고로움을 끼쳐드리는 것만 같아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사오나
염치불구하옵고 큰스님께 파사현정을 간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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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글)
제가 파악하기로는 묘유는 없을것 같지만 있는것(깨달음 상태 같은것)이고 진공은 무 자체 같습니다.
>
>묘유와 진공은 모두 자성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렇게 구별(대조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인가요?
>
>만약 진공이나 묘유 어느 한 쪽뿐이라면 어떨까요?
>
>이 둘이 하나로 붙어다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글)
묘유니 진공이니 하는 말은 결국 우리의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일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에 아주 거룩한 의미를 붙여놓고
그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다느니 하는 표현을 하는데
사실 그냥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삼라만상의 근원을 이야기하고 있는 표현일뿐입니다.
진공이라는 것은 텅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공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인데
진정한 공은 공마저도 공하기 때문에 텅비어 있어서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속에서 모든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텅 비어 있기에 어떤 것이라도 그 속에 담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분별하는 마음처럼 좋은 것은 있게 하고 나쁜 것은 내치는 것이 아니라
좋고 나쁨이 없는 그러한 것을 진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묘유라는 것은,
세상 만물이 성주괴공하는 법성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연법이 있어서 이것과 저것이 만나서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그 새로운 것은 또 다른 것과 만나서 또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그리고 사라지는 그 법칙과 에너지를 묘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진공만 있고 묘유가 없으면 삼라만상이 생겨날 에너지가 없으니
삼라만상이 생길 수도 없고 진공이 드러날 수가 없으며,
묘유만 있고 진공이 없으면 묘유를 일으킬 수 없으니
역시 삼라만상이 생겨날 수가 없겠지요.
진공과 묘유라고 하니 대단한 것 같지만,
결국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텅 비어 있지 않으면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텅 비어 있지 않으면 일어나는 생각에 물들어서 그 색깔을 지니고 있으니
다른 생각들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바로 진공입니다.
그리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이 바로 묘유입니다.
그런데 왜 묘유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의 분별하는 마음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을 그냥 생각으로 보지 않고
그 생각의 내용물을 열어보고는 그 생각의 내용에 따라 울고 웃습니다.
즉 분별하여서 항상 그 생각을 어떻게 하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우리의 본 마음은 어떤 생각이 일어나든 막지 않고
또 어떤 생각이 사라져도 따라가거나 물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모든 생각들이 일어나고 사라질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 처럼 분별없이 생각을 일으키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진공 속의 묘유요 묘유로 진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어느 조사의 게송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야야포불면 : 夜夜包佛眠)
아침마다 부처와 함께 일어나네 (조조환공기 : 朝朝還共起)
부처가 간곳을 알려면 (요건 잊어버렸네요.^^)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가만히 있는 곳에 머물러라(語默動靜止)
부처가 간 곳을 알려고 한다면 그냥 살아라는 말이지요.^^
위 게송에서 머무른다는 말은
모든 행동을 하거나 생각을 할 때에는 그 것만 하라는 뜻입니다.
즉, 행동이나 생각을 하면서 그 행동이나 생각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가?
하고 분별하고 고뇌하고 번민하지 말고 그냥 살아라는 뜻입니다.
그냥 살아라고 하면 또 시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럼 막 살라는 말이냐? 고 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막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시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막사는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지요.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그냥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해 시비를 하지 않고 나아가서 다른 이의 삶을 시비하지 않고
또 다른 이의 삶과 자신의 삶이 맞지 않으면 피해갈 뿐 그를 미워하지 않고
또 피해갈 수 없으면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 것인데
시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막사는 삶에서
과연 진정으로 시비를 하지 않고 살 수가 있겠는지요.
시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막사는 식으로 말한다면
주위와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좋은 것만 마음대로 하고 사는 것인데
정말 그렇게 살 수가 있을까요?
물론 마음이야 그렇게 먹을 수가 있겠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지 않은데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냥 살 수가 있겠어요?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는데?
그냥 사는 것과 막사는 것은 분별이 없으면 같은 말이고 가능하지만,
시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극히 좋아하는 것만 취하는 분별심으로
막사는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진공이요 묘유의 삶입니다.
장군죽비:
질문글)
제가 파악하기로는 묘유는 없을것 같지만 있는것(깨달음 상태 같은것)이고 진공은 무 자체 같습니다.
묘유와 진공은 모두 자성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렇게 구별(대조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인가요?
만약 진공이나 묘유 어느 한 쪽뿐이라면 어떨까요?
이 둘이 하나로 붙어다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글)
[묘유니 진공이니 하는 말은 결국 우리의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일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에 아주 거룩한 의미를 붙여놓고
그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다느니 하는 표현을 하는데
사실 그냥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삼라만상의 근원을 이야기하고 있는 표현일 뿐입니다.
진공이라는 것은 텅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공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인데
진정한 공은 공마저도 공하기 때문에 텅비어 있어서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속에서 모든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텅 비어 있기에 어떤 것이라도 그 속에 담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분별하는 마음처럼 좋은 것은 있게 하고 나쁜 것은 내치는 것이 아니라
좋고 나쁨이 없는 그러한 것을 진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空은 비어 공한 것을 이를 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말은 비약된 논리라 할 것이올시다.
[그리고 묘유라는 것은,
세상 만물이 성주괴공하는 법성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연법이 있어서 이것과 저것이 만나서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그 새로운 것은 또 다른 것과 만나서 또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그리고 사라지는 그 법칙과 에너지를 묘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만상의 현상을 묘유라 하는 것이 아니올시다.
위에서 空이라 한 것은 우주만유의 법성(法性)이며 자성(自性)이라 하는
이 마음의 실상 성품이 형상없이 참으로 비어 공(眞空)한 것을 이르며
그러한 비어 空한 성품이 아예 아무것도 없는 공함이 아니라
묘(妙)하게도 보리반야가 있어(有) 작용 할 줄 아는 것으로 실존하는 것을 일러
진공이되 묘한 있음이 있다 하여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하는 것이올시다.
[만약에 진공만 있고 묘유가 없으면 삼라만상이 생겨날 에너지가 없으니
삼라만상이 생길 수도 없고 진공이 드러날 수가 없으며,
묘유만 있고 진공이 없으면 묘유를 일으킬 수 없으니
역시 삼라만상이 생겨날 수가 없겠지요.]
진공은 들어나는 것이 아니올시다.
참으로 비어 공하다는 진공은 드러날 형상이 없는 체성(體性)을 이르는 것이며
묘유 또한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근원이 되는 바탕의 성품으로 묘한 있음(보리반야)인
실상인 것을 칭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로소이다.
[진공과 묘유라고 하니 대단한 것 같지만,결국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텅 비어 있지 않으면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텅 비어 있지 않으면 일어나는 생각에 물들어서 그 색깔을 지니고 있으니
다른 생각들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진공묘유인 體인 것을 알면 생각은 그 마음바탕에서 일으켜 작용한 묘용(妙用)인 것임을
분명하게 살펴 알아야 하리다.
그리고 텅비어 있지 않으면이 아니라 빈 가운데 묘한 있음인 보리가 있어 생각을 일으킨다 하여야 할 것이며
'마음이 텅비어 있지 않으면 생각에 물들어서 색깔을 지녀서 다른 생각들이 일어 날수가 없다' 한 말은 잘못 안 소견이올시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바로 진공입니다.
그리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이 바로 묘유입니다.]
다시 지적 하여야 하겠소이다.
마음이라 하는 것이 비어 공하나 묘하게 보리반야가 실존하므로 진공묘유라 이름하는 것이며,
생각은 곧 마음의 작용이며 이 작용하여 일으키는 생각을 묘용이라 칭하는 것이올시다.
[그런데 왜 묘유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의 분별하는 마음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을 그냥 생각으로 보지 않고
그 생각의 내용물을 열어보고는 그 생각의 내용에 따라 울고 웃습니다.
즉 분별하여서 항상 그 생각을 어떻게 하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우리의 본 마음은 어떤 생각이 일어나든 막지 않고
또 어떤 생각이 사라져도 따라가거나 물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모든 생각들이 일어나고 사라질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 처럼 분별없이 생각을 일으키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진공 속의 묘유요 묘유로 진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거듭 일러 드리거니와 생각 일어나고 살아지는 것은 작용인 것이지 이것을 묘유라 하지 않으며,
진공은 비어 공한 것일 뿐 들어날 무슨 있다 할 형상이 없는 것이올시다.
어느 조사의 게송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야야포불면 : 夜夜包佛眠)
아침마다 부처와 함께 일어나네 (조조환공기 : 朝朝還共起)
부처가 간곳을 알려면 (요건 잊어버렸네요.^^)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가만히 있는 곳에 머물러라(語默動靜止)
부처가 간 곳을 알려고 한다면 그냥 살아라는 말이지요.^^
하하...아니올시다. 부처란 행주좌와 그 가운데 항시 자아와 함께 하는 진아임을 이른 것이올시다.
위 게송에서 머무른다는 말은
모든 행동을 하거나 생각을 할 때에는 그 것만 하라는 뜻입니다.
즉, 행동이나 생각을 하면서 그 행동이나 생각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가?
하고 분별하고 고뇌하고 번민하지 말고 그냥 살아라는 뜻입니다.
아니올시다.부처로써 부처를 밖으로 찾지 말라는 뜻이올시다.
그냥 살아라고 하면 또 시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럼 막 살라는 말이냐? 고 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막 사는 것입니다.
웃기려 드는구려.
참자기가 곧 자아를 여의지 않음을 체득(體得)하라는 뜻이올시다.
[그런데 사실 시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막사는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지요.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그냥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해 시비를 하지 않고 나아가서 다른 이의 삶을 시비하지 않고
또 다른 이의 삶과 자신의 삶이 맞지 않으면 피해갈 뿐 그를 미워하지 않고
또 피해갈 수 없으면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 것인데
시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막사는 삶에서
과연 진정으로 시비를 하지 않고 살 수가 있겠는지요
시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막사는 식으로 말한다면
주위와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좋은 것만 마음대로 하고 사는 것인데
정말 그렇게 살 수가 있을까요?
물론 마음이야 그렇게 먹을 수가 있겠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지 않은데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냥 살 수가 있겠어요?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는데?
그냥 사는 것과 막사는 것은 분별이 없으면 같은 말이고 가능하지만,
시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극히 좋아하는 것만 취하는 분별심으로
막사는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사는 것,그것이 바로 진공이요 묘유의 삶입니다.]
위 게송과는 동떨어진 말이라 할 것이며,
시비는 반드시 나쁜 것 만이 아니로소이다. 是非란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것이니
옳고 그른 것도 밝게 알지 못한다면 무엇을 일러 4지(四智)라 하리오.
진공묘유만 국집하게 되면 변견에 떨어질 것이며
진공묘유에 머물지 말고 크게 되살아나 일체종지를 깨치지 못하면
죽은 시체와 다르바 없을 것이며,
이러한 변견에 떨어진 이들이 법리(法理)를 깨쳐 알지 못하고 스스로 지은 살림으로
남들에게 그르친 알음알이를 주입하여 나도 구하지 못하고 남도 망치는 우(愚)를 범하게 되는 것이니
삼가 극히 말을 조심하여야 할 것이라 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