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사띠와 사념처

Borealis 임박사 2013. 5. 21. 09:46

명상의 근본 개념 사띠(念)


사띠의 의미와 적용

한문으로 염(念)으로 번역되는 팔리어 사띠(sati)는『숫타니파타』등의 고층의 경전에서부터 자주 등장하며, 니까야 내에서는 사띠(sati) 또는 사또(sato), 사띠만트(satimant)이라는 용어로 단독으로 사용되거나 사념처(四念處)와 육수념(六隨念, cha-anussati) 또는 십수념(十隨念, dasa-anussati)이라는 용어로 자주 사용되는 수행관련 용어이다.

먼저 사띠에 대한 어원적인 해석은 니카야에서는 보이지 않고, 주석 문헌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sati에 대한 정의와 주석문헌 특유의 네 가지 측면에서의 해석은『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에 의해 사람들이 기억함으로(saranti taya), 또는 그 자체가 기억함으로(sayam va sarati), 또는 단지 기억하는 것 그 자체이므로(saranamattam eva va), 이것을 사띠(念)이라고 한다 (esa ti sati).

그것은 들뜨지 않는 것을 특성으로 하며 (sa apilapana-lakkhana), 잊지 않는 것을 기능으로 하고 (asammoha-rasa), 보호하는 것을 나타남으로 하거나 (arakkha- paccupatthana), 대상을 향한 상태를 나타남으로 한다 (visayabhimukhabhava -paccupatthana va).

견고한 생각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하거나(thirasanna -padatthana), 몸 등(身受心法)에 대한 사띠를 확고하게 하는 것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한다 (kayadisatipatthana-padatthana va).”(Vism, PTS ed. 464)

이처럼 사띠는 기억이라는 기본적인 의미와 함께, 사띠의 대상을 잊지 않고 포착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고, 감각기관을 번뇌의 침입에서 보호하며, 대상과 마주하고 있는 마음을 말한다.

따라서 대상을 마음으로 잊지 않고 챙기고 있는 상태라는 의미에서 ‘마음챙김’이라고 번역하였다. 마치 간화선에서 화두를 잊지 않고 챙기고 있는 상태를 ‘화두를 챙긴다’라고 하듯이 마음이 대상을 잊지 않고 챙기고 있다는 의미에서 마음챙김이라고 한 것이다.

이외에 ‘깨어있음’, ‘주의집중’, ‘마음지킴’, ‘알아차림’ 등으로 쓰이고 있다. 영어로는 ‘mindfulness’, ‘bare attention’, ‘noting’, ‘awareness’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사띠(sati)는 마음집중(定)과 지혜(慧)의 공동의 기반이 되는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집중의 기반이 되는 사띠는 경전에서는 주로 수행의 대상에 대한 반복적이며, 지속적인 마음챙김을 의미하는 수념(隨念)으로 나타나며, 대표적으로는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入出息念)이 있다.

그리고 지혜의 기반이 되는 마음챙김은 <대념처경> 등에 제시된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에서 나타난다. 물론 사념처 수행의 내용에는 마음집중을 이루는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入出息念)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집중을 위한 방법까지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두 가지 위빠사나 수행의 흐름이 있는데 하나는 호흡에 대한 사띠(入出息念)를 기반으로 한 위빠사나와 사띠파타나(念處) 위빠사나이다.

전자는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을 마음집중(定)을 이루는 방법으로 먼저 수행한 다음에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서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위빠사나를 하는 수행법이며,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레디 사야도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우 바 킨 전통의 고엔카와, 순룬 사야도, 모곡 사야도 등이 가르쳤다.

사띠파타나 위빠사나는 밍군 사야도의 전통을 잇는 마하시 사야도에 의해 대중화된 수행법으로 수행의 도입 단계에서 바로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직접 관찰하는 수행법으로 마음집중을 미리 닦지 않는 위빠사나 즉 순수 위빠사나 (純觀, 乾觀)라고 한다.

순수 위빠사나에서는 마음챙김(sati)을 통해서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현상 (복부의 움직임, 가려움, 통증, 저림, 뻣뻣함 등)을 있는 그대로, 단순한 주위 집중(bare attention)을 통해서 분명하게 파악한다.

즉, 현재 분명히 깨어 있는 마음으로 자신의 심신의 모든 현상을 좋거나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면서, 경험되는 그대로 명확하게 알아차린다.

실제로 미얀마에서 가르치는 위빠사나 수행은 마음챙김(sati) 수행이 어느 정도 향상되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음챙김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띠빠타나를 의미하는 마음챙김(正念)과 지혜(초보적인 단계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를 의미하는 분명한 앎(正知)은 서로 의지하는 관계이다. 정념이 있을 때, 정지가 있고, 정지가 있을 때, 정념이 있다.

분명한 앎이란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행주좌와) 하는 등의 일상적인 행동을 할 때, “나는 걷고 있다” “나는 앉아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염처경」에 나와있다. 이런 앎은 마음챙김이 없이는 생기지 않는다.

분명한 앎 자체를 바로 위빠사나라고 하지는 않지만, 위빠사나 수행이라는 수레는 바로 이 정념과 정지의 두 가지 수레바퀴에 의해 굴러간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마음챙김[正念]은, 파악된 현상에 대한 분명한 앎[正知]과 항상 짝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마음챙김은 단순한 작업이지만 쉽지는 않다. 끊임없는 마음챙김을 지니기 위해서는 강한 열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챙김이 순일해지기까지는 애써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이 예리해지고 정확해지면, 마음집중(三昧)이 이루어지고 마음집중에서 현상들에 대한 올바른 앎(지혜)이 생겨난다.

마음집중과 지혜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마음에서는 번뇌, 갈등, 불안, 우울 등의 부정적인 요소들이 제거되어 나아가기 시작한다. 이 때가 되면 더욱 수행을 가속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며, 수행 자체가 행복과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게 해준다.

이는 깨달음의 7가지 요인(七覺支)이 경험되는 때이다. 하지만 좋은 현상들이 경험되더라도 이러한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쉬지 말며 최종 목표인 열반에 이를 때까지 마음챙김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사띠와 삼빠자나

좌선을 처음 해보는 사람은 누구나 망상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언제 잡념이 떠올랐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거기에 사로 잡혀 방황을 한다.

따라서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수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띠(念, sati)와 삼빠자나(知, sampajanna)는 바로 그러한 과정을 묘사하고자 고안된 불교 고유의 술어이다.

사띠는 원래 ‘잊지 않음(不忘)’을 의미하였는데, 경전에서는 이를 ‘감각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에 비유하곤 한다. 즉 특정한 관찰 대상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마음을 흩뜨리지 않고 단속하는 것이 바로 사띠이다.

한편 삼빠자나는 알아차림을 의미하는데, 주변의 사물과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바르게 아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혹은 대·소변 따위를 볼 때에도 분명하게 자각하면서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위에서 언급한 좌선에 적용한다면, 잡념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삼빠자나이고, 그렇게 해서 마음을 되돌리는 것이 사띠이다. 더불어 되돌린 마음으로 일정한 집중 상태에 머무는 것이 사띠라면, 다시 그러한 상태에 대해 분명하게 깨어있는 것이 삼빠자나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행자는 습관적인 망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오롯이 각성된 상태를 체험한다. 양자에 대해 ‘마음지킴(sati)’과 ‘알아차림(sampa-janna)’으로 번역한다.


사띠와 사념처

초기불교의 경전에 따르면, 사띠와 삼빠자나는 사념처(四念處)의 수행을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묘사된다. 즉 “열렬한 삼빠자나(知)와 사띠(念)를 지니고서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찰한다”는 내용이 도처에 등장한다.

따라서 사띠와 삼빠자나는 사념처의 기능적 요소라 할 수 있고, 사념처를 일컬어 사띠와 삼빠자나에 의한 수행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띠는 삼빠자나를 수반하지 않고 단독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실천법 자체를 가리키는 명칭으로서, 사념처(四念處, cattaro sati-patthana)의 ‘념(念, sati)’이 그러하고, 안반념(安般念, 安般守意, anapana-sati)의 ‘념’이 그러하다.

또한 일부 경전에서는 사띠에 대해 직접 사념처 전체의 내용을 대입하는 경우도 있다(SN. vol.5. p.142 등). 따라서 사띠는 수행을 이끄는 요소임과 동시에 실천법 자체를 가리킨다.

사념처는 초기불교 실천체계의 전형으로서, “중생을 정화하는 길, 슬픔과 근심을 초월하는 길, 고통과 고뇌를 소멸하는 길, 지혜를 증득하는 길, 열반을 실현하는 길”로 묘사된다.

또한 사념처는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 의지하고 법을 등불로 삼아 의지하라(自燈明法燈明 自歸依法歸依)”는 말씀의 실제 내용으로 해설되고, 나아가 이것을 실천하면 최고의 비구가 될 것이라는 부처님의 유훈이다(DN. vol.2. pp.1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