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이란
일원상이란 우주의 근본, 막힘이 없는 진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선문답에서 일원상을 그려서 제시한 것은 첫째로 절대의 진실인 불법 그 자체를 상징하여 나타낸 것, 둘째는 수많은 선정의 삼매를 모두 이 일원상에 포함시킨 것, 셋째는 주객의 차별적인 대립이 나누기 이전의 근원적인 불성의 지혜작용, 넷째는 일원상이 불법의 대의를 나타내는 문자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 다섯째는 일원상이 불법의 종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 여섯째는 원상이 그대로 언어 문자를 초월한 경지에서 종지에 계합된 사실입니다.
즉 일원상은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신심명〉에 “둥글기가 허공과 같이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고 읊고 있는 것처럼, 진여(眞如), 불성(佛性), 불심(佛心)은 법계와 하나 된(萬法一如) 것이며, 일체 제법이 본래 공(空)한 모습을 그림(圖示)으로 제시한 법문입니다. 하나의 원상은 무한의 시간과 공간을 중복시킨 법계를 상징한 동적(動的)인 도식화라고 할 수 있으며, 즉 선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의 시간을 나타내고, 원상안의 공간은 시방(十方)세계를 표현합니다.. 즉 시방삼세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지금이라는 찰나의 시간에 삼세가 함께하고, 여기라는 공간이 시방세계인 것이며, 자기의 본래심(佛心)은 만법과 하나 된 법계라는 사실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제시하고 있는 법문입니다.
육조단경에 보면 하루는 육조대사가 "나에게 한 물건이 있으니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으며 등도 없고 낯도 없으니 모든 사람은 알지 못하겠는가?" 라고 이릅니다.
신회가 나와서 이르기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본원이요 신회의 불성이 나이다"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너에게 말하기를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다고 말했거늘 네가 문득 본원이니 불성이니 하고 부르느냐?" 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육조대사가 언급한 한 물건이라는 단어도 불성, 근원 등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말로서 그렇게 설명한 것일뿐 진리 그 자체는 언어로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므로 단어 자체가 진리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고추' 라는 단어를 말해도 입 안에는 고추맛이 없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고추라는 단어가 물론 우리가 다 아는 매운 맛의 고추를 의미하지만 '고추'라는 단어 자체가 진짜 '고추'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조단경에 보면 육조대사가 회양스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와있는데,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라고 물으니,
회양스님이 이르길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곧 맞지 않나이다"
라고 받아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진리나 불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규정할수 없으며 어떤 단어로 설명해도 그 단어가 완벽한 진리나 불성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일원상이라는 것은 말로서 표현되지 않는 진리, 불성을 억지로 형상화 한 것으로서 하나의 둥근 원을 그려놓은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진리를 깨우처 부처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지 둥근 원 자체는 대단한 것이 아닌 그정 상징입니다. 따라서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둥근 원도 쓸데없는 군더더기 일뿐입니다. 그래서 깨우친 입장에서는 둥글다고 할 것조차 없는 경지, 즉 무원의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아무런 찌꺼지를 남김없이 쓸어버린 절대 진리의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