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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백답

6사 외도

by Borealis 임박사 2015. 11. 24.

"나 자신은 모든 것을 승인하지 않는다."
"만일 그대가 '자신은 모든 것을 승인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그대 자신의 견해는 승인하는가?"
"그러한 견해도 나는 승인하지 않는다."
"만약 그대가 그러한 자기 자신의 견해를 승인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은 모든 것을 승인하지 않는다'라는 점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는가? 그대가 '아무 것도 승인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누가 승인할 것인가?"

이 대화는 손톱이 길어서 장조(長爪)라고 불리는 바라문과 부처님 사이에 오고간 문답이다. 장조처럼 아무것도 승인할 수 없다는 견해는 회의론에 속한다. 여기서 부처님의 질문은 회의론 자체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모순을 추궁하고 있다. 아무것도 승인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회의론자가 그러한 자신의 주장을 승인한다면, 아무것도 승인할 수 없다는 그 주장 자체가 무너져 버린다. 만일 그 가자신의 주장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내세운 주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고 만다.

장조라는 바라문은 부처님의 수제자인 사리불의 숙부라는 전설이 있고, 사리불은 목건련과 함께 당시의 대표적인 회의론자였던 산자야의 제자였으나 부처님께 귀의했다고 알려져 있다. 산자야는 6사 외도 중의 한 사람이다.

앞에 소개한 대화는 불교가 당시에 풍미했던 다양한 견해들을 비판하고 극복하면서 성립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리고 사리불과 목건련이 250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부처님께 귀의했다는 전설은 그 같은 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6사 외도는 불교가 성립할 당시에 유행했던 특출한 견해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견해를 부처님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면, 6사 외도와 부처님 사이에는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쟁점이 있었을 것이다. 이 쟁점은 6사 외도를 소개하는 불전에 매우 한정적으로 시사되어 있다.

그러나 《범망경(梵網經), 한역 장아함에서는 梵動經》에는 당시 사상계의 쟁점을 망라하여 62종의 견해로 소개하고 있다. 소위 62견으로 불리는 쟁점들을 한가지로 집약하면 인과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쟁점은 6사 외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6사 외도는 당시 사상계의 대표자들이므로 이들을 소개하는 데서 어떤 쟁점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그만큼 최대의 현안이자 관심사이었을 것으로 이해할만하다.

불전에서는 《사문과경(沙門果經), 이역으로는 佛說寂志果經》이 6사 외도를 모두 소개하고 있다. 《사문과경》에서는 부처님이 6사 외도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는 않는다. 포살일에 신하들은 아자타샤투르 왕에게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줄선각자로서 6사 외도를 천거했다. 그러나 왕은 묵묵히 듣고만 있던 의사 지바카의 권유로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가 부처님에게 질문한 것은 과보의 문제였다. 즉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기술 덕분에 현세에서 눈앞에 보이는 결과를 향유하고 있는데, 구도자로서 생활하면 그 결과가 그와 같이 명백하게 곧장 현세에서 나타난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고 그는 부처님에게 물었다.

이에 부처님은 왕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했느냐고 묻고, 그렇다고 대답하는 그에게 그들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를 말해 보라고 하였다.

《사문과경》에서는 이와 같이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6사 외도를 소개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불교와 6사 외도 사이, 더 나아가 당시 사상계에서 쟁점으로 떠올라 있던 문제가 주제로 명시되어 있다. 그 쟁점은 업과이다. 업의 과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쟁점이었고, 이 쟁점에서는 과보가 현세에서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왕이 전하는 6사 외도의 답변은 자이나교의 니간타를 제외하면 한결같이 부정적인 것이며, 업과와 내세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도덕을 부정한 것으로 귀결된다.
먼저 푸라나 캇사파는 어떠한 행위도 죄가 되거나 공덕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업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같은 주장은 도덕 부정론으로 분류된다.

막칼리 고살라는 원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이미 정해진 기간 동안윤회하게 되어 있다고 하는 그의 주장은 결정론 또는 숙명론으로 분류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아지타 케사캄발린은 과보와 내세를 부정한다. 지·수·화·풍이라는 4요소만으로 모든 것이 성립하므로 인간도 죽으면 그 4요소로 되돌아간다고 하는 그의 주장은 유물론으로 분류된다.

파쿠다 캇차야나는 4요소에 고통과 즐거움과 생명(영혼)을 추가한 7요소만으로 모든 것이 성립하며, 생명은 불멸이므로 살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니칸타 나타풋타는 마시는 물을 네 가지로 제어하라는 자제를 강조한다. 이것은 물 속의 미생물도 해치지 않음으로써 불살생을 엄격하게 지키려는 자이나교의 기본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다.

산자야 벨랏티풋타는 아무 것도 단정해서 말할 수 없다는 회의론을 내세운다.
《사문과경》의 나머지 내용은 처음에 제기한 아자타샤투르 왕의 질문에 대한부처님의 답변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는 부처님의 첫 번째 답변만으로도 불교측의 반론을 대신할 수 있다.

부처님은 예를 들어 답변한다. 성실하고 열심히 봉사하던 그대의 하인이 출가하여 훌륭한 사문이 되었을 경우, 그대는 그를 불러 다시 하인으로 일하게 하겠느냐고 왕에게 묻자, 왕은 그렇지 않고 그를 환대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왕은 이것이 곧 사문 생활의 과보가 현세에 눈앞에 나타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다른 문헌들에 산재한 단편적인 언급들을 조합해 보면, 6사 외도의 견해가 모두 부당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문과경》은 업의 인과 문제를 쟁점으로 부각시켜 6사 외도와 불교측의 견해를 대비하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부처님의 답변은 형이상학적인 논의보다는 행위의 실천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성립한다는 연기설의 일환이라는 점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같은 종류의 쟁점을 《범망경》에서는 연기설로써 비판하여 불식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정승석/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장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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