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이공저공님께서 언어이전에 사고가 존재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강아지가 차를 피한 것과 의식속의 미묘한 흐름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과 상관없는 육체작용을 예로 들으셨습니다.
한가지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단어의 선택입니다.
사고란[思考] ①생각하고 궁리함. ②≪철학용어로서≫ 사유(思惟)②. 사고-하다 <타동사> 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즉 의식적인 정신적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위에서 예를 든 작용들은 무의식적인 작용인 것입니다. 그것을 사고라고 표현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토론을 할때는, 물론 이것이 인터넷의 한계이지만, 체계적인 공부가 밑받침이 되어야 어느정도 가능해 집니다.
따라서 이공저공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말의 요점은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에도 정신적 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작용을 사고라고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든 예들은 사실 본능에 가깝습니다. 본능은 두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것 또는 무조건 반사와 조건반사가 그것입니다. 선천적인 것은 갖난아이가 배운적이 없어도 엄마 젖을 빨줄 아는 것입니다. 후천적인 조건반사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과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갖난 아이에게 칼을 들이대도 아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만, 어른들에게 눈에다 칼을 들이 대면 눈을 깜짝거릴 뿐만 아니라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심장박동이 올라갑니다. 이런 작용들은 언어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반응을 합니다. 즉 무의식의 영역인데 제7 말라식의 작용이라 할수 있습니다. 제7말라식은 8식에 저장된 기억을 자아라고 믿고 개념화하고 추상화하여 욕망을 일으키는 무의식적인 작용을 하는 의식입니다. 그렇다면 제7말라식은 개념화 추상화라는 프로세스를 일으키는데 그 추상화 개념화라는 것이 언어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이 사람의 언어를 할수 없다고 해서 그들만의 언어가 없다고 하는 것은 그 해석이 잘못된 것입니다. 동물들은 동물들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이라는 것 사고한다는 작용은 바로 의식적인 작용이며 언어(개념화 추상화)를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명백해집니다. 그렇다면 의식할수 없는 무의식적인 작용들은 생각해서는 안되는 긴급한 상황을 미리 기억에 저장시켰 두었다가 자아를 보호할 목적으로 즉시 반응하도록 만들어둔 장치라는 것입니다. 그런 정신작용은 대상을 의지해서 일어나는 것이지 혼자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경계가 사라지면 의식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식도 공하다고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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