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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스크랩] 불교의14 무기설

by Borealis 임박사 2011. 7. 3.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무기설(無記說)이라는 독특한 가르침이 있다.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고 옆으로 미루어 놓았다는 의미로, 사치기(捨置記)라고도 한다. 인간이 가지는 궁극적인 의문에 대해 부처님이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만동자( 蔓童子, Malunkyaputta)라는 비구가 하루는 부처님을 찾아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던진 일이 있다. "이 세계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끝이 있는가 없는가. 영혼과 육체는 하나인가 둘인 가. 여래는 사후에 존속하는가 안하는가."<중아함 권 60. 전 유경> 다른 종교에서는 명확한 답변을 해주고 있는데 석가모 니의 교설에는 그러한 해명이 없으므로 몹시 답답했던 모양이 다. 그는 만일 끝까지 부처님께서 답변을 거절한다면 부처님 곁을 떠나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석가모니 는 독 화살에 맞은 사람의 비유를 든 다음, 그런 문제는 "깨달음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깨우치고 계신다.

부처님이 무기로써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은 대표적인 질문은 〈중아함경〉 ‘전유경(箭喩經)’에 보이는 우주와 인간에 대한 문제다. 일반적으로 14무기로 표현되는 14가지 문제는 다음과 같다. “(1)세계는 ①상주(常住)인가 ②무상(無常)인가 ③ 상주이며 또 무상인가 ④상주도 아니고 무상도 아닌가. (2)세계는 ⑤한계가 있는가 ⑥한계가 없는가 ⑦한계가 있거나 또는 한계가 없는가 ⑧한계가 있지도 않고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닌가. (3)영혼은 신체와 ⑨같은가 ⑩다른가. (4)여래는 사후(死後)에 ⑪존재하는가, ⑫존재하지 않는가 ⑬ 존재하며 또 존재하지 않는가, ⑭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이 14가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것을 14무기라 하며, ③④와 ⑦⑧의 질문을 제외한 경우에는 10난무기라 한다.

아함 속의 《전유경(箭喩經)》에 따르면 제자 가운데 마룽가야 푸타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이런 문제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늘 이상의 문제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이에 그 젊은 제자는 끝내 대답을 회피한다면 자신은 부처님을 스승으로 존경할 수 없으며 수행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때 부처님은 유명한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그를 깨우쳐 주었다. "어떤 사람이 독화살에 찔렸다 하자. 즉각 의사가 왔는데 만 일 화살에 맞은 사람이 '누가 이 화살을 쏘았는가. 그리고 그는 큰 사람인가 작은 사람인가. 피부는 검은가 흰가. 그가 사용한 화살은 어떤 것이며 활줄은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이것을 알기 전에 치료해서는 안된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그런 것들을 알 기 전에 죽어버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먼저 독화살을 뽑고 응급 치료를 하는 일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계가 유한이든 무한이든 현실적 인생에는 생노병사가 있고 우비고뇌가 있다. 그것을 이 세상에서 어떻게 극복하느냐, 나는 그것만을 가르치는 것이다. 내가 그런 문제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 것은 그 답을 하는 일 이 수행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답으로써 고뇌를 극복하고 정각과 열반으로 인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교용어인 무기설 (無記說)은 사치기(捨置記)라는 용어로 더 많이 사용되어지고 있다. 이말은  무아설(無我說)과 더불어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가르치실때 사용하시던 방법을 말한다. 당시 인도에는 흰두교, 자이나교 등 여러 종교집단이 있었다. 각 종파의 지도자들은 서로 토론을 하여 토론에 지는 사람은 토론에 이기는 사람의 제자가 되는 아름다운 관습이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내노라는 제자들도 사실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이었으나 부처님과의 토론에서 승복하고 자신들이 거느리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한 경우가 많았다. 인도인들은 철학적인 사유를 굉장히 즐기는 민족이다. 무더운 인도의 기후 속에서 사람들의 육체적 활동이 다소 느려지기 쉽기때문에 그늘에 앉아 인생과 우주를 사유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흰두교의 베다에 정통한 브라만들이 부처님과 우주와 윤회에 관하여 토론을 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도 의심치 않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떠오르는 새로운 종교 지도자였던 석가모니를 견제하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철학적 난제들을 갖고 부처님과 토론을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들이 들고온 토론 주제에 대해 정확한 답을 해주지 않으면서도 그런 시도를 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부처님의 제자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진리의 힘이요, 자비의 힘이며, 방편의 승리였던 것이다.

부처님 당시 우주와 영혼에 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부처님께서 어떤 마을에 법회에 가기 전에 아난존자가 먼저 사람들이 모여있는 자리에 가서 위에 말한 우주와 영혼에 관한 형이상학적 질문들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일반인들에게 이러한 주제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수 있다고 부처님께서는 생각하셨으리라 본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를 "부사의경계不思議境界"라고 하여 무명 중생들의 생각으로 알수 있는 경계가 아니라고 표현된다. 그러한 것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며 자칫 말로 표현하는 것이 또 다른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우주에 관하여 아무 언급도 안하신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세기경' 또는 '본세기경'에 보면 우주의 시작과 생성에 관하여 설명되어져 있다. 거기에 보면 우주는 모든 것이 인과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제석천(인드라)이 사는 궁전에 있는 유리구슬에 투영된 우주 삼라만상(제망찰해)가 아닌 형체없는 것에서 형체 있는 나오는 것이 묘사되어있다.
영혼과 육체에 관하여 대부분의 종교들은 '영육이원론靈肉二元論'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영원불변하는 영혼이 있어야 구원을 받거나 또는 천상세계에 태어날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하기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다섯가지 쌓임, 오온이라는 용어도 자이나교의 영향을 받아서 생겨난 용어이다. 즉 우리에게는 아주 작고 순수한 영혼이 있는데 거기에 욕망, 업, 죄 같은 것이 쌓인다고 그들은 믿는다. 그들은 철저히 영육이원론을 믿기때문에 육체를 고행을 통해 항복시켜 영혼의 해방을 얻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불교에서는 '영육이원론'을 배척한다. 왜냐하면 '무아'이기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또 윤회의 주체에 대해 복잡한 반론들이 제기되기 때문에 '유식론'쪽에서 상당히 이부분에 대해 설명해 놓았다고 볼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문제는 말로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왜냐면 자칫 설명해 버리면 불교교리에 모순을 초래할수도 있고, 다른 종교의 공격을 받을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인도사회에서 윤회를 벗어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개념이었던 것이다. 신을 뛰어넘고 윤회를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반인들에게는 어쩌면 여래 그 자체만으로도 궁금증이 많았을 것이다. 형상에 집착하고 영혼 개념이 뿌리 박힌 중생들에게 여래를 설명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승경전에서는 법신, 보신, 화신으로서 부처를 설명하기 때문에 어느정도 불교 교리가 갖추어진 사람이라면 이해할수 있도록 설명되어져 있지만, 초기불교시대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던것 같다.  열반경에 보면 석가모님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후 부처님을 관에 넣어 다비를 하려는데 관이 공중에 떠서 불에 타지 않았다고 한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가섭존자가 달려와서 부처님이 계신 관을 향해 절을 하면서 '여래시어 어찌 이리 일찍 가셨나이까?' 라고 말을 하자, 관 밖으로 부처님 발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다비가 이루어 졌고 부처님 사리가 8가마나 나왔다고 한다. 아마도 이 화두를 풀어야 마지막 난제를 알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출처 : 청봉스님의 장군죽비
글쓴이 : 법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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