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공부

[스크랩] 이규(一休)선사 이야기

by Borealis 임박사 2011. 7. 10.
한 제자가 그의 스승 이뀨를 보러 왔다. 제자는 이따금 수련을 해왔었다. 비가 오고 있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신발과 우산을 바깥에 놔두었다. 그가 스승에게 예를 표하자, 스승은 신발의 어느쪽에 우산을 두었는지 물었다.
자, 무슨 질문이 이런가? 그대는 스승이 그런 터무니없는 질문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대는 스승이 神에 대해서나 쿤달리니가 일어나고 차크라가 열리고 머리에서 빛이 발생하는 것 따위를 묻기를 기대한다. 그대는 그렇게 거창한 것, 초자연적이고 밀교적인 것을 묻는다.
하지만 이뀨는 아주 평범한 질문을 한다. 기독교 성자들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이나 승려들이나 흰두교 스와미들은 그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질문은 오로지 진정으로 붓다와 함께 있는 자, 붓다 안에 있는자, 진정으로 붓다인 자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그 스승은 신발의 어느쪽에 우산을 두었는지 묻는다. 지금 신발이나 우산이 영성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만일 그대에게도 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대는 짜증을 낼 것이다. 그대는 이 사람이 도대체 스승이 아니라고 느낄 것이다. 이게 무슨 질문이란 말인가? 그 속에 무슨 철학이 있을 수 있는가?
하지만 그 속에는 무진장한 가치가 담겨 있다. 만일 그가 신에 대해, 쿤달리니나 차크라들에 대해 물었더라면 그것은 난센스이고 전혀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의미가 있다. 제자는 기억 할 수 없었다. 누가 신발 둔 곳이나 우산 둔 곳을,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신경쓰겠는가? 누가 신경쓰는가? 누가 주의 깊에 신발이나 우산에 주의를 기울이는가?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제자는 거절 당했다. 이뀨는 말했다. "가서 7년 간 더 명상하라."
"7년이나?" 제자가 말했다. "겨우 이 작은 허물 때문에 말입니까?"
이뀨가 말했다. "이것은 작은 허물이 아니다. 허물은 작거나 큰것이 아니다. 너는 아직 명상적으로 살고 있지 않다. 그게 다다. 돌아가라. 7년 간 더 명상하고 다시 오라."

이것이 불교 가르침의 정수이다. "정성을 기울여라. 모든 것을 지극하게 하라. 사물들 사이에 이것은 하찮고 저것은 아주 영적인 것이라고 차별을 짓지 말아라. 그것은 그대에게 달려 있다. 주의를 기울이고 지극하게 하면 모든 것이 영적이 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지극하게 하지 않으면 일체가 비영적이 된다."
영성은 그대에 의해 부여된다. 그것은 세상에 전하는 그대의 선물이다. 이뀨와 같은 스승이 우산을 만지면 우산도 다른 모든 것처럼 신성하다. 그리고 그대가 神을 만진다면 神까지도 한찮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만지는 데 따라 다르다.
명상적인 에너지는 연금술적이다. 그것은 저금한 쇠붙이를 금으로 변형시킨다. 명상적이 될수록 그대는 더욱 도처에서 신을 본다. 그 최정점에서는 일체가 신성하다. 바로 이 세계가 낙원이고 바로 이 몸이 붓다이다.


-------------- 라즈니쉬, 법의연꽃(이뀨선사어록) 중에서 ----------
출처 : 청봉스님의 장군죽비
글쓴이 : 미소짓는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