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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스크랩] 경전을 해석할때 (대혜스님 서장중에서)

by Borealis 임박사 2011. 7. 3.
법을 아는 자는 법을 두려워 한다.

그대가 정리했다는 '금강경'을 행복한 마음으로 쭉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꼼꼼히 오래 음미하다 보니 의심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여래가 상을 갖추지 않았기에 아뇩보리를 얻었다'라고 표현한 진역 '금강경' 문장이 뜻이 대단히 분명합니다. 이글의 뜻이 지극히 쉬운데도 처음부터 그대가 기이한 뜻을 구함이 너무 지나쳐서 특이한 견해를 세워 다른 사람이 그대의 뜻을 따르도록 바라고 있습니다.

그대가 인용한 위역 '금강경'경문을 풀이한 '무착론'에서는 '법신으로 여래를 보아야하니 여래는 상이 갖추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여래는 상이 갖추어진 것으로 보지 못할지라도 상이 다 갖추어진 것으로 인因을 삼아야 아뇩보리를 얻을 것이다'고 집착하기에, 이런 집착을 여의도록 하기위하여 '금강경'에서는 '수보리야, 너의 뜻에 어떠하나, 여래가 '상을 이룬 것으로 아뇩보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라고 물은 것이다"는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위역 '금강경'에서 말한 '수보리야, 이런 생각들을 하지 말라는 등'의 이 뜻은 상이 갖추어진 그 몸이 보리가 아니며 또 상이 갖추어진 것으로 인因을 삼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相이 色의 自性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의 뜻이 대단히 분명하거늘 처음부터 그대가 잘못 보고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色은 相의 연기이며, 상은 법계의 연기입니다. 양나라 소명태자가 경에서 '여래가 상을 갖추지 않았기에 아뇩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한 냉ㅇ을 가지고 진역 '금강경' 삼십이분 가운데 무단무멸분으로 제목을 삼은 것은, 부처님께서 수보리가 상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연기가 멸한다고 생각할까 걱정했던 내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는 원래 수보리가 처음 모태에 있을 때 곧 공적을 알아서 거의 연기의 모습에 머물지 않았던 탓입니다.

뒷부분에서 '공덕시보살론'의 맨끝에 있는 '상相을 이룬 것이 진실로 있다면 이 상이 멸할 때 곧 단멸이라 한다. 왜냐하면 생겨나기에 단멸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따왔으며, 또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다시 '무엇 때문인가. 모든 법이 무생無生의 성품이니, 그러므로 단견과 상견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이 두가지 견해를 멀리 여읜 것이 법계의 모습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성性을 말하지 않고 상相을 말한 것은, 법계는 성의 연기이며 상相은 법계의 연기라는 사실을 말했기에 성性을 설하지 않고 상相을 말하는 것입니다. 양나라 소명태자가 말한 '무단무멸'이 이것입니다.

이 단락의 내용이 분명한데도 또 그대가 기발한 것을 너무 지나치게 구하여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금강경'의 내용을 더 보태거나 뺄수 있다면 일대장교를 본자들이 모두 저마다 억지추측으로 이해한 것들을 따라서 모든 내용들을 더 보태거나 뺄 수 있을 것입니다.

한퇴지와 같은 사람도 '논어' 가운데 나오는 화畵자를 가리켜서 주晝자로 보고 "옛본이 틀렸다'고 했습니다. 한퇴지의 견식으로 바로 고쳐 버릴수 있는데도 다만 이렇게 말만하고 글 가운데서 논해 놓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역시 법을 아는 자가 법에 대하여 조심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규봉선사가 '원각소초'를 만들었는데, 그분이 '원각'에서 깨달은 곳이 있어서야 비로소 글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원각경' 가운데 나오는 '일체중생 개증원각 一切衆生 皆證圓覺'이라는 구절에서 규봉선사는 '증證'자를 '구具'자로 고치고 證자로 되어 있던 것은 '번역자의 잘못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범본을 보지 못하였기에 또한 이처럼 '원각소' 가운데에 논해 놓았을 뿐, 감히 바로 '원각경' 자체를 고치지는 않았습니다.

뒷날 늑담진정 화상께서 '개증론 皆證論'을 지으면서 그 안에서 규봉스님을 통렬하게 나무라며 젖비린내 나는 볼품없는 놈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중생이 모두 원각을 갖추어서 증득하는게 아닌 것이라면, 축생은 영원히 축생이고 아귀는 영원히 아귀인지라, 시방세계 전체가 모두 구멍이 없는 쇠망치로서 어찌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 사람도 진심으로 드러내 근본에 돌아갈 것이 없으며, 범부도 또한 해탈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중새이 이미 모두 원각을 갖추고 있기에 또한 반드시 원각을 증득할 필요가 업기 때문입니다.
출처 : 청봉스님의 장군죽비
글쓴이 : 미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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