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면일여의 경계를 어찌 아는지요?
숙면일여(宿眠一如) 라는 용어는 깊은 잠에 들어 꿈도 꾸지 않을 때에도 화두가 한결같이 들린다는 용어인 것이올시다.
이 용어를 너무나 쉽게 인용해서들 쓰나
참으로 알아야 할 것은 "공부를 지어감에 몽중일여 숙면일여가 되도록 정진해야 한다"는 경책의 말씀을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되는냐?" 로 쓰는 우매한 짓들을 하고들 있어 고소를 금하지 못하는 바 올시다.
숙면 일여가 되고 있음을 알때는 벌써 파기상종으로 "숙면도 몽중도 일여가 아님"을 바로 살필줄 아셔야 하겠소이다.
어찌 공부지어 가는 분상에 참으로 화두일여가 되고 있다면 일여를 일여인줄 알겠소이까?
또한 엄격히 말하면 "숙면 일여"라는 것은 잠이 깊이 들어 아무 생각도 없이 끊어진 상태를 "숙면" 이라고 하는것인 바
일체가 끊어진 상태의 깊은잠 가운데 어찌 "일여한 화두 의심"이 될수가 있겠소이까?
그렇게 깊은 잠 가운데서도 화두가 여일 하다면 이럴때는 "숙면 일여"라기 보다는 "몽중일여"라 하는것이 적절한 표현이라 할것이 아니겠소이까?
아는체들 하여 마치 "자신이 그러한 경계로 공부지어 왔"으며 "그러한 경계로 깨달음을 얻은양" 하는 그러한 말 재주에 속지를 마시기 바라오이다.
오직 간절한 의심이 그렇게 일상 행주좌와 어묵동정 가운데 화두가 일여하게 스스로 되어질뿐, 그렇게 될려고 하는것도 벌써 망념을 지어가고 있는 것이니,
그렇게 행주좌와 의심의심 지어가고 지어가노라면 목적 하는바의 구경각을 證得하게 됨을 아시기 바라며,
이러한 경책의 말씀도 구경이 아니라 과정이요 수단인 길일뿐인 것임을 아시기 바라오이다.
*소소영영함을 아는 주체가 있는지요?
소소영영(疏疎靈靈)이란 자성이 본래 맑아 청정하면서 항시 깨어있어 반야로써 살피는 고요한 가운데 밝음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곧 본성반야의 밝고 또렷한것을 말로써 이르는것을 말하는 것이올시다.
따라서 이것이 참나의 성품이거늘 어찌 불이 용광로에 들어있으나 뜨거움을 알겠소이까?
스스로 소소영령한 것을 보았다 하면 그것은 거짓이요, 착각인 것이올시다.
그것이 주체거늘 어찌 자기가 자기를 알리가 있겠소이까?
[청봉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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